조선시대 정치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왕의 행차에서 제례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음악이 빠지지 않았다. 조선 초기 잔치를 벌이면 왕과 신하가 함께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조선시대 음악인 악장을 연구한 책이 나왔다.

 조규익 교수(숭실대 국문과)가 새 책 『조선조 악장 연구』(새문사)를 펴냈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되어 있다. 1부에서는 조선조 악장이 ‘지속과 변이의 원리’를 구현한 실체로 보는 역사적 관점을 제시하여, 그 공시적・통시적 본질의 탐색이 이 책의 목적임을 밝혔다.

▲ ▲ 조규익 저 '조선조 악장 연구' 표지 <사진=새문사>

 제 2부에서는 각종 국가의 제례들에서 '문선왕 악장'・'사직악장'・'선농악장'・'선잠악장'・'풍운뇌우 악장' 등 아악악장들을 대상으로 그것들의 텍스트 양상과 주제의식을 통해 중세적 관습성 혹은 동아시아적 보편성을 분석해 냈다.    

 3부에서는 '문소전 악장・'석전음복연악장'・'창수지곡'・'경근지곡'・'오륜가'・'봉래의 악장'・'봉래의 진・퇴구호' 등을 중심으로 텍스트 및 주제의식의 실험성과 조선조 악장의 독자성을 분석했다. 4부에서는 앞부분과 달리, ‘정재 악장에서 확인되는 송도 모티프와 선계 이미지의 연원 및 지속 양상’, ‘시조와 궁중악장의 관계’, ‘북한문학사와 악장’, ‘고전시가교육과 조선조 ‘고려속가 악장’의 텍스트 및 콘텍스트: '동동' 지도론’ 등을 통하여 조선조 악장의 본질을 살폈다.

이 책은 악장의 연구 범위를 확대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 동안에는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 등만 주로 악장의 범주 안에서 거론되거나 연구되어 왔다. 그러나 예악정치를 표방한 조선시대의 악장으로서 두 작품 외에 현재까지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들은 매우 많다.

조 교수는 그것들 가운데 아악악장들과 향・당악악장들의 텍스트를 중점적으로 분석하였다.  석전이나 선농, 선잠 등 조선조의 국가제사에 쓰이던 아악악장은 중국 역대의 왕조에서 국가 제사에 사용하던 것과  텍스트가 같거나 비슷하다. 말하자면 『시경』․『서경』․『주역』 등에서 직접 악장의 주요 문구나 모티프를 차용해왔고,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중국 역대 왕조의 악장을 답습함으로써 결국은 같은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조선왕조는 그런 방법들을 통해 아악악장 혹은 제례악장의 동아시아적・중세적 보편성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향악악장이나 당악악장에서는 우리의 고유한 노래장르들을 악장으로 수용함으로써 우리만의 독자적이고 특수한 미의식을 추구한 것으로 보았다. 특히 이들 노래에서 발견되는 텍스트의 구성이나 주제의식의 실험성은 아악악장과 분명히 구분되는 점이기도 하고, 악장이 고전시가사 전개에 큰 기여를 한 점이기도 하다고 했다.

조 교수의 지론은  텍스트와 콘텍스트 및 상호텍스트에 대한 면밀한 고찰 없이 고전시가론이나 고전시가사 혹은 국문학사의 완벽을 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고려ㆍ조선의 시가문학은 악장의 현실적인 존재를 도외시할 경우 비생산적인 ‘동어반복’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관찬문헌인 조선조의 악서(樂書)들에 고려의 악장[학계에서 말하는 이른바 ‘고려속요’]들이 기록되어 있다는 텍스트의 측면, 조선과 고려의 궁중 무대예술이라는 콘텍스트 혹은 시대・문화적 맥락의 측면, 당악을 비롯한 외래 음악이나 공연과의 연계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텍스트적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비로소 그 본질은 드러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 교수의 지적대로, 악장의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한 초기에 비해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아직도 악장에 대한 폄하의 분위기는 지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대부분의 학자들 사이에 '동동'이 조선조 '악학궤범' ‘아박’ 정재의 창사[혹은 악장]로 기록되어 있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고려의 시대, 정치, 문화적 맥락으로만 재단하려는 관성이 바뀌지 않고 있는 점은 아주 흥미롭다.

'고려사 악지'를 비롯한 몇몇 기록들에 간단히 기록된 ‘동동’ 관련 언급이 학자들의 생각을 아직도 지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그들 대부분은 ‘동동’이란 노래가 고려 궁중에 수용되어 속악정재라는 무대예술로 꾸며질 때 이미 존재하던 당악정재들의 양식이 그 표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처음부터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 교수는 "動動之戱 多有頌禱之詞 盖效仙語而爲之[동동놀이는 송도지사가 많은데, 대개 仙語를 본떠 만든 것이다]"라는 언급에서 ‘선어(仙語)’란 말을 엉뚱하게 해석해온 것을 그 분명한 예로 들 수 있다고 했다. 헌선도(獻仙桃), 수연장(壽延長), 오양선(五羊仙) 등 당시에 성행하던 당악정재들 속의 선모(仙母)를 비롯한 신선(神仙)들이 잔치 자리의 좌상객인 임금에게 바치던 '송도(頌禱)의 말'이 바로 ‘선어’[즉 ‘신선의 말’]이었음을 몰랐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상호 텍스트적 상황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해프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원천적으로 고려노래의 정체는 대부분 궁중의 음악에 쓰이던 악장들이었다는 점과, 조선조 악장의 모범적 선례가 고려의 악장이었다는 점만 인지했다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악장 연구로 얻을 수 있는 단편적 소득에 불과하지만, 연구하기에 따라서는 앞으로 이것 말고도 많은 것들이 밝혀지리라 보는 것이 조 교수의 예측이다.

조교수는 1990년에 이 분야의 첫 저서인 『선초 악장문학 연구』(숭실대학교 출판부)를, 2005년에 『조선조 악장의 문예미학』(민속원)을 각각 펴냈고, 이제 『조선조 악장 연구』를 펴냈다. 아울러 그는 "이제 저 개인의 25년 악장 연구사를 일단 마무리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3부작으로 악장 연구의 도정을 일단 끝냈다.

악장의 ‘장르적 성립과 국문학적 위상’을 주로 논의한 『선초 악장문학 연구』나, ‘악장의 미적 본질’, ‘악장에 나타난 왕조의 현실과 주제의식’, ‘악장에 구현된 개인의식과 집단이념의 조화’, ‘조선조 악장의 통시적 양상’ 등을 중점으로 다룬 『조선조 악장의 문예미학』과 달리 그간의 논의들에서 빠진 ‘아악악장 및 향악,당악 악장들의 텍스트 양상과 주제의식’ 등을 다룸으로써, 이 책에 ‘악장 연구의 마무리’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조규익 저『조선조 악장 연구』503쪽. 28,000원

새문사 (서울시 마포구 대흥로 6길 6-12) 02-715-7232 www.saemoonb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