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문학을 함으로써 어떤 이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문학을 하는 것일뿐, 거기서 얻는 이득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최대의 덕목이 진선미(眞善美)라면 진선미 어느 것에도 닿을 수 없지만 진선미를 지향하는 태도, 자세만 남습니다. 그것이 역설적으로 우리 자신을 진선미이게 합니다.”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학과장 이승우) 초청으로 11월 8일 오후 4시 법과대학 모의법정에서 강연을 한 이성복 시인은 시종일관 문학하는 태도,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학이 주는 감동은 쓰는 사람이 자기 삶에 대해 갖는 진실함, 철저함에 있습니다. 작품의 진정성이란 곧 작가가 갖는 삶에 대한 진정성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다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관념이고 정말 중요한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깥에 있습니다. 관념으로 편입되지 않은 것이 곧 핵심입니다.”

이 시인은 시를 새끼발가락에 비유했다. 몸의 가장 끝자락에 있는, 하찮은 것 중의 하찮은 것이지만, 없다면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새끼발가락처럼 세상에서 가장 사소한 것을 급소처럼 드러내는 방식이 바로 시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들이 문학에서 중요할 수 있습니다. 패자부활전이 바로 문학이지요. 표현하고도 남아있는 지점을 지시하는 것, 그것이 문학입니다. 따라서 계몽이나 철학은 1차적인 기능이고 문학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불완전, 불편함, 불안감 속에 남아있는 그것이 가는 대로 지켜볼 뿐입니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카메라 조리개가 잠깐 열릴 때 그 불빛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자신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문학적 기쁨은 찰나의 순간입니다.”

이 시인은 검찰에 소환된 우병우 수석이 수사 받는 사진을 찍기 위해 반대편 건물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다가 600여 컷을 촬영하여 그 가운데 우병우 수석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세 컷을 건진 사진기자의 자세가 곧 시인의 자세라고 설명했다. 물개를 잡을 때 얼음구멍에서 숨을 쉬려고 나오는 그 순간을 위해 그 자리에서 터를 잡고 기다리듯이, 글 쓰는 사람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인은 “글 쓰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알고자 하는 세상이 우리에게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예비하는 자세이며, 그것이 곧 글쓰기의 윤리이다.”라고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성복 시인은 경북 상주 출신으로 서울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7년 계간 ‘문학과 지성’ 겨울호를 통해 등단했다. 1980년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로 한국문단에 큰 충격을 안겼으며 ‘남해금산’, ‘그 여름의 끝’,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아, 입이 없는 것들’,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1982년), 소월시문학상(1990년), 현대문학상(2007년), 2014년 육사문학상(2014년) 등을 수상했다. 현재 계명대학교 문예창작과 명예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