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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5․18조사위)는 과거사법 최초로 ‘성폭력’을 조사 범위에 포함하는 법률을 개정했으며, 2020년 5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직권으로 조사 개시했습니다. 그리고 사건 후 43년 만인 2023년 12월 해당 사건이 ‘진상규명 결정’ 되었습니다. 국가폭력 상황에서 발생한 성폭력 피해에 대해 국가 책임을 인정한 첫 진상조사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해당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은 “사건 후 사망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피해자, 현재까지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스러운 삶을 위로할 방안을 찾지 못했다.”로 마칩니다. 사건 후 40년 만에 진상 조사가 개시된 한계이며,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를 제시한 것입니다.
5․18조사위는 특별법이 정한 기한에 따라 2024년 6월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그에 앞서, 「5․18진상규명법」 제34조에 따라 피해자의 치유와 명예 회복을 위한 권고사항을 명시한 ‘종합보고서’를 대통령실에 보고하였습니다. 동법은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해당 권고사항에 대한 이행계획 또는 조치결과를 국회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피해자에게 ‘진상규명 결정 통지서’를 보낸 것 외, 오늘날까지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습니다. 이에 저 추미애를 비롯한 29명의 제22대 국회의원이 피해자의 손을 잡고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를 개최합니다.
작년 5․18조사위에서 피해 사실이 인정된 <직가의2-5(4)> 사건 피해자의 경우, 1989년 국회 5․18광주특위 청문회를 앞두고 증언을 준비한 바 있습니다. 당시 5․18민중항쟁 부상자동지회 회장이 비구니가 된 피해자를 찾아가 증언을 청취하고, 청문회 증인 신청을 하였으나 무산되었습니다. 쟁점사안이 아니라거나 너무 끔찍해서 국민들이 믿어줄 것 같지 않다는 야당 국회의원들의 만류가 그 배경 중 하나입니다. 만약 그때, 국회 청문회에서 복수의 계엄군이 군용트럭에 10대 여학생을 끌고 가 강간하였다는 피해 증언이 공개되었다면, 어땠을까요? 당시 청문회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여소야대 국면에서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오늘 22대 국회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1980년 당시 10~30대였던 피해 여성이 자신의 생애사적 비밀을 조사관 앞에서 증언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이분들의 용기와 결단이 유언비어로 일축되던 ‘5․18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 실상을 드러나게 했습니다. 이제 국회가 응답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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