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러시아에 전쟁 무기를 제공한 데 이어 최근 1만 2천여 명의 대규모 전투병력을 파병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한반도 안보 지형이 격랑에 휩싸였다. 러시아에 파병한 ‘폭풍 군단’(11군단)은 적진 침투와 교란이 주특기인 최정예 특수부대다. 이들이 최신 군사 경험을 이어받고,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첨단 무기 기술 이전 등을 받으면 한반도를 심각하게 위협하게 된다.
지난 6월 북·러 간에 체결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은 북한의 러시아 전쟁 원조는 물론 한반도 위기 시 러시아의 군사 개입을 보장한다. 최근 북한이 남북 연결 도로와 철도를 폭파한 조치도 이 조약과 맞닿아 있다. 북한군 파병은 세계 전쟁 도발 행위로 동북아 안보 환경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미·중 간 대결 구도에 러시아가 가세할 수 있어 향후 한·미는 한반도 안보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
| |
 |
|
| ▲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
6·25 때 미 극동사령부가 뿌린 심리전단 25억 장을 보고 귀순한 북의 귀순병 33%가 심리전(心理戰) 덕분에 살았다. 파병 북한군은 총알받이로 떼죽음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심리전을 지원하여 파병 북한군도 살려야 한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다. 상무(尙武)정신이 희미해져 가는 나라들의 운명은 역사 속에 패자들로 기록됐다. 6.25 남침이 발발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도쿄의 맥아더 장군에게 이렇게 호통쳤다. “미국이 내 말을 안 들어서 전쟁이 났다. 당장 달려와 이 나라를 구하라!”
이 대통령은 건국과 동시에 “한미방위조약을 맺어 미군을 주둔시키고 한국군을 무장시켜 달라.”고 수없이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무기 타령 그만하고 경제 걱정이나 하라”면서 6.25 발발 전에 주한미군을 철수해버렸다. 그 후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은 즉각 전면 남침을 감행하였다.
국시(國是)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의 근본이 되는 주의(主義)와 방침’을 의미한다. 우남 이승만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1921년 북만주에서 소련의 계략에 속아 독립군이 궤멸당한 ‘자유시 참변’은 반공주의가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방 후, 조선공산당의 정판사 화폐위조 사건에 이어 대구폭동, 제주4.3폭동, 여순반란사건을 겪으면서 이승만의 반공주의는 더욱 굳어졌다.
대한민국이 반공을 국시(國是)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소련 괴뢰정권의 수괴인 김일성의 남침 때문이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은 공산 세력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반공교육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반공의 핵심은 국리민복(國利民福)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의 두 가지 축이었다.
한국의 현대사는 학생들의 ‘4.19 혁명’의 꿈과 과업을 ‘5.16군사혁명’ 정부가 실행함으로써 국가발전을 함께 이룩해온 역사라고 볼 수 있다. 4.19혁명으로 들어선 민주당 정권 시기에 좌익세력이 모두 들고일어나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을 비롯한 각종 좌익단체를 결성하고, 좌익 학생들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휴전선에서 남북학생회담을 하겠다고 나서는 판이었다.
이러한 용공적 사상 혼란을 일소하고 경제개발을 통한 빈곤 탈피를 강력하게 추진하여 기아선상에 놓인 민생고를 해결하고 조국의 근대화를 이룩하겠다는 절박한 심정이 5.16 군사혁명의 동인(動因)이었다.
‘5.16 혁명공약’ 가운데 첫 번째가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1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 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였다. 6.25 전쟁 이후 3,000번 정도의 도발이 북에 의해서 자행되었다. 육영수 여사 암살, 아웅산 테러, 제1·2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강화도 포격도발, 서해 공무원 피살 등이 끊이질 않았다.
한국의 좌익들은 ‘반공’을 비롯하여 한·일국교 정상화, 베트남 파병, 경부고속도로 건설, 포항제철 건설 등 ‘박정희정신’이 발현되는 시기마다 이를 반대했다. 반공은 대한민국 건국과 수호의 대전략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빈곤 탈출 없이는 반공이 성공할 수 없다”며 반공 대전략의 내용을 경제개발로 채웠고, 그것은 마침내 성공했다. 좌익들은 ‘자유 대 공산’ 구도를 국가정체성 바로 세우기가 아니라, 색깔론으로 매도하고 있는데, 이는 ‘반공 국시’를 철 지난 이념논쟁으로 비하하는 것이다. 한류를 이끄는 선진 대한민국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반공의 기치를 변함없이 높이 들어야 한다. 그래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의 길을 열 수 있다.
< 저작권자 © 엔지티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기사제보 및 문의 ngtv@ngtv.tv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