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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원조한다는 유엔의 결정에 따라 노르웨이는 한국에 주둔하는 유엔군 총 사령관의 지휘 아래 미8군 소속의 유엔군을 지원하는 이동외과병원 즉, 야전병원 시설 및 의료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노르웨이 야전병원(NORMASH)는 1951년 7월 19일에 개원, 1954년 11월 10일 폐쇄될 때까지 약 9만 여 명의 군인과 민간인, 적군 등 부상자를 치료했다. 이들 중 1만 4,755명이 입원치료를 받았다. 입원 환자 중 한국인은 총 4,802명에 이른다. 이 야전 병원을 '노르매시'라 한다.
한국 정전 60주년(27일)을 앞두고 국립중앙도서관(관장 임원선)은 25일(목) 오후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에서 기념도서 ‘노르매시(Normash)’ 기증식을 개최했다.
'노르매시(NORMASH, Korea i våre hjierter)'는 노르웨이 야전병원(Norway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을 뜻하는 말로, ’우리의 가슴 속에 자리한 한국’을 부제로 달고 있다. 한국전쟁에 파견된 노르웨이 참전용사가 당시 겪은 경험과 일화를 일기, 수필과 사진 등으로 기록한 에세이집.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인 2010년 노르웨이 현지에서 첫 출간돼 올해 한국 정전 60주년을 기념, 주한노르웨이대사관에서 번역하여 새롭게 한국어판을 발간했다.
이 책은 제1장 ‘한국전쟁 당시’, 제2장 ‘전쟁 후’, 부록 ‘추억의 앨범’ 등으로 구성됐다. ‘잊힌 전쟁 : 한국전쟁’에 대한 자세한 소개로 시작되는 제1장 ‘한국전쟁 당시’은 보초병․전기 기사․성직자․간호사 등 참전용사들의 기록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제2장 ‘전쟁 후’는 노르웨이와 한국 사이의 결속, 재방문, 근무자 명단 등이 수록돼 있다. 부록 ‘추억의 앨범’은 110여장의 사진 속에 당시 노르웨이 야전병원 근무자들과 민간인 부상자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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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르매시> <사진=국립중앙도서관> |
책 내용을 보자.
환자가 많은 날은 총 73시간 동안 무려 173건의 수술을 하기도 했어. 의사 수가 부족했기 때문에 우리는 보초병과 운전병, 심지어는 요리사까지 불러들여서 수술을 집전하는 동안 턱이나 팔을 붙들어 달라 요청할 때도 있었단다. 모두들 각자 맡은 일을 두말없이 잘 해냈어. 처참한 광경을 보고도 의식을 잃거나 불쾌감을 호소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지. 모두들 도움을 주는 데에만 정신을 집중했기 때문일거야 - 베른하르드 페우스(p.22)
우리는 그곳에 함께 근무하던 한국인 보초병들과도 대화하며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또는 “당신 이름은 무엇입니까?”등의 간단한 말들을 가르쳐주었고 그들의 말을 배우기도 했다. 우리는 한국인 보초병들에게서 ‘아리랑’도 배웠다. 아리랑은 한국 전통 민요로 이 노래를 모르는 한국인은 찾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우리는 한밤중에 보초를 서면서 아리랑을 함께 부르기도 했다. 한국인 보초병에게서 아리랑을 배운 우리는 그들에게 노르웨이 동요인 ‘페르 스펠레만’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도 노르웨이에서 모임을 가질 때면 아리랑을 목청껏 부른다. -아르빗 피예레(p.31)
‘블랙켄’에서 수없이 많은 청중을 앞에 두고 아리랑을 불렀다. ‘폴과 암탉’, ‘노아’ 등의 노르웨이 동요를 한국 보초병들에게도 가르쳐주었고, 그들은 우리에게 ‘봄타령’ 등을 가르쳐주었다. - 닐스 S. 에겔리엔(p.33)
자정이 되자 계피와 설탕을 넣은 쌀죽이 배급되었다. ‘강’은 내 와이셔츠를 깨끗하고 정갈하게 다림질해서 가져다주었다. 작은 선물과 용돈을 받아 홀어머니가 계신 초가집에서 짧은 휴가를 보낼 그가 단 며칠이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성탄절 전에는 목욕을 하고 집 안팎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군대에서 보내는 성탄절은 그저 철모에 물을 받아놓고 고양이 세수를 하는 것이 전부다. - 닐스 S. 에겔리엔(p.35)
‘김’이 가장 갖고 싶은 것이 시계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오후가 되어 부대원 전원이 거의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작은 선물 상자 하나를 받아든 그의 입가에 커다랗고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마치 작은 소년처럼 들뜬 표정으로 상자를 열고 시계를 꺼내든 그는, 좋아 어쩔 줄 모르며 그곳에 모인 이들의 손을 하나하나 꼭 잡으며 “땡큐, 땡큐”를 외쳤다. 곧 우리는 한국인 보초병들도 방문했다. 이들 열다섯 명의 장병들이 그간 경험한 일은 말로 다할 수 없으리라. 그곳에서도 작은 선물상자들이 주인을 바꾸어 전해졌다. 무엇을 준다는 것이 그토록 행복하게 여겨졌던 때도 없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진심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 닐스 S. 에겔리엔(p.36)
전쟁 중에 온갖 참혹한 일을 겪은 군인들은 괴로워하고 아파하며, 때로는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군인들은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에 전념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 다빗 란드뷔(p.43)
북을 향한 보루에는 동방의 작은 아침의 나라, 수백만 국민과 전 세계의 희망과 염원을 담고 있다.
전 세계에서 온 장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많지는 않으나 노르웨이인들도 이곳에 왔다.
노르웨이인들의 가슴에 선명히 자리잡은 그때 그 기억들, 한국 국민의 미덕과 수천 년 문화, 고통을 어루만지고 따스한 가슴, 역경을 이겨내는 밝은 미소, 연연히 이어져 내려오는 아름다운 자연과 피를 같이 했음인가. - 강가의 기념비, 올라브 산드빅(p.55)
노르웨이 야전병동에는 몇몇 미국인과 상당한 수의 한국인들도 있었어요. 나는 그들과 함께 잊지 못할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낯선 문화를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내게 매우 큰 경험이었습니다. 근무를 서지 않는 날에는 병원 업무도 도와주곤 했는데, 의료 경험이라곤 전혀 없는 나로선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지요. 그 일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 닐스 S. 에겔리엔(p.71)
나는 한국을 제2의 조국이라 말합니다. 한국과 한국 국민을 떠올리면 수만 가지 생각과 감정이 나를 사로잡습니다. 한국의 흥미로운 문화와 희망찬 국민성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 닐스 S. 에겔리엔(p.71)
헬리콥터 소리는 곧 부상자가 들이닥칠 것임을 의미했지요. 우리는 텔레비전 드라마와는 달리 심각한 현실속에서 일을 했지요. 여가 시간도 별로 없었어요. 가끔은 하루에 400여명의 환자를 돌보기도 했으니까요. 24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연이어 일한 적도 많았습니다. -렉소브(p.89)
이른 아침, 부모 잃은 한 아이가 팔에 총상을 입고 구급차에 실려 노르웨이 야전병원으로 왔다. 팔에 깁스를 하고 야전병원 내를 거니는 아이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아이의 밝은 모습에 모두들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가 모두의 마스코트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 추억의 앨범(p.XIX)
이번 기증식은 안네 그레떼 스트룀 에릭센(Ms. Anne-Grete Strøm-Erichsen) 노르웨이 국방부장관과 톨비요른 홀테(Mr. Torbjørn Holthe) 주한노르웨이대사, 저자 대표 아르빗 피예레(Mr. Arvid Fjære) 씨를 비롯한 노르웨이 재향군인회 등 50여명의 관계자가 참석했다. 노르웨이국방부장관은 한국어판을, 참전용사 아르빗 피예레 씨는 노르웨이어판을 각각 임원선 국립중앙도서관장에게 직접 전달했다.
기증식은 귀빈들의 축사, 기증 자료의 주요 내용을 노르웨이어와 한국어로 순차 낭독하는 시간, 기증자료 및 기념선물 증정, 임원선 관장님의 감사인사 순으로 진행됐다. 또한 낭독과 동시에 원서 편집자 엘링 에리클리(Erling Eikli) 씨가 직접 제작한 관련 사진이 스크린에 시연됐다. 한국 전쟁 관련 도서 및 사진 등 작은 전시회도 마련됐다.
국립중앙도서관 관계자는 "한국 정전 60주년과 노르웨이 참전을 기념하고, 도서와 문화를 매개로 한국과 노르웨이의 우호관계를 다지는 의미 있는 행사"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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