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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라는 직업은 정의(Justice)를 좇아 ‘진실(Truth)’을 찾기 위해 ‘글쎄(Doubt)’와 ‘아마도(Maybe)’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죄의 무게를 재는 마음속 저울의 추도 좌우로 기울며 분동을 거듭한다. 더군다나 가족 간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다룰 때면 무엇이 천륜을 거스르고 이들을 돌아서게 한 것일까 ‘글쎄’와 ‘아마도’를 반복하며 진정한 정의에 대한 검사로서의 번민을 더하게 만든다.
5년 전이다. 2008년 여름 앳된 얼굴의 A(당시 21세)양이 갓 백일이 지난 아이를 등에 업고 검사실을 찾아왔다. 지방 국립대에 재학 중이던 A씨는 캠퍼스 커플로 남편을 만나 일찍 가정을 이뤘다. A씨는 2006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슬픈 사연을 갖고 있었다.
당시 A양의 부모는 이혼한 상태. A양은 고교 졸업 때까진 아버지와 살다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학교와 가까운 곳에 있던 어머니의 집에서 학교를 다니던 중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5개월이 지난 후 자신 앞으로 소장이 송달됐다.
고모부의 친형인 B씨(당시 52세)가 “아버지가 죽기 전 자신에게 5000만 원을 빌려갔다”며 차용증을 근거로 A양에게 소송을 낸 것이었다. 1심 민사재판에서는 B씨가 제시한 차용증을 증거로 채택해 법정상속인인 A양에게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큰 돈이 없었던 A양은 결국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기고 간 집과 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법원을 오가며 경황이 없었던 A양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직후부터 줄곧 “집을 포기하라”며 자신을 종용했던 친할머니(당시 80세)와 고모(당시 48세)의 행동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A양은 법원 판결에 항소를 하는 동시에 자신의 입장을 담은 고소장을 냈다. 물증 하나 없이 하소연에 가까운 고소장을 처음 접했을 땐, 단순 친인척 간 재산다툼으로 볼 수 있었다. 이미 법원(1심 민사재판)에서도 패소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군데군데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았다.
채권자라며 소송을 제기했던 B씨가 생전 A양의 아버지에게 빌려간 돈을 갚으라며 요구하거나 이자를 받은 흔적이 없었다. 물론 5000만원이라는 큰 돈이 나간 흔적도 없었다. B씨는 원룸 보증금으로 받은 돈을 갖고 있다가 빌려준 것이라고 둘러댔다. 다른 친인척들도 한결같이 A양의 아버지가 돈을 빌려갔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여러 명의 참고인 조사를 거듭한 끝에 수년간 B씨의 원룸 주택 중개를 맡아온 부동산중개인이 당시 해당 원룸주택의 임대차 거래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말하며 사건은 친할머니와 고모 등 A양의 친가가 모두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관련자들이 구속된 후 친할머니와 고모는 “손녀가 아버지를 저버린 채, 자기 엄마한테 가버리고 아버지 재산을 가로채려는 것이 괘씸했다”고 했다. 하지만 오해였다. 정작 A양의 엄마는 이혼 후 식당 일을 하며 어렵게 살고 있었고 시골에서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딸이 통학에 어려움을 겪을까봐 힘든 형편에서도 돌봐주던 상황이었다.
형사재판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A양은 아이를 안고 다시 검사실을 찾아왔다. A양은 법정에서 가족끼리 얼굴을 맞대야 하는 상황이 싫어 포기할까도 고민했지만 재판이 진행될수록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하며 아버지를 잃은 자신과 동생에게 모질게 대했던 할머니와 고모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며칠 후 A양은 법원에 “할머니와 고모가 처벌받길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문득 당시 A양의 말이 떠올랐다. “제가 아무리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어도 이렇게 자식을 낳아보니 부모 자식 간의 정이라는 것이 어떤지 조금은 알게 됐어요.”
A양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자녀 생각에 탄원서를 제출한 것 같다. 이후 법원은 A양의 탄원서와 피해액이 상당부분 변제된 점을 들어 할머니와 고모부 등 관련자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정의 없는 사랑은 맹목적이고 사랑이 없는 정의는 잔인하다는 것이 짧지만 검사로서 일하며 얻은 교훈이다. 죄와 벌로만 끝날 수 있었던 이 사건이 5년이 지난 후에도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까닭은 죄의 무게를 덜어냈던 용서, 사랑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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