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소개
※ 북촌한옥마을 방문 시 유의사항
최근 북촌을 찾는 방문객이 증가함에 따라 북촌한옥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주거환경 침해에 따른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관광지로 개방하고 있는 남산한옥마을이나 민속촌 등과는 달리 북촌한옥마을은 서울의 대표적인 한옥 밀집 주거지역으로 주민들이 실제 거주하고 있는 생활공간입니다.
이 점을 유념하시어 아래 행동을 자제해 주시고, '침묵관광'을 부탁드립니다.
- 고성과 장난, 촬영 등으로 소음 발생하지 않기 (특히, 가회동 31번지 등 한옥밀집지역)
- 가져온 쓰레기는 가지고 가기
- 단체방문은 10명 내외로 제한하기
- 확성기나 마이크 사용 안하기
- 열려진 집 문 틈새로 촬영하지 않기
북촌 한옥밀집지역(가회동 31번지, 33번지 일대 등)에서는 문화관광해설사의 가이드는 진행되지 않을 예정이오니 도보관광코스 이용 시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600년 수도의 스펙트럼 속으로
서울에서 가장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역사문화의 현장은 단연 북촌한옥마을이다. 600년 수도의 역사를 자랑하듯 전통 한옥들이 즐비한 동네다.
북촌은 조선 시대부터 이어오는 지명이다. 당시 서울의 중심에는 청계천이 흘렀는데 이를 기준으로 북쪽을 북촌이라 했고 남쪽을 남촌이라 했다. 북촌에는 당대의 권세가들이 살았다. 근처의 궁궐을 보면 이해할 수 있듯 왕가를 중심으로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대부들이 살았다. 남촌은 남산 아랫자락에 해당하는 남산한옥마을 주변이었다. 하급 관리나 벼슬을 멀리한 선비들이 많았다.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남촌에는 술이 맛있고 북촌에는 떡이 맛있다’라는 뜻이다. 두 지역의 문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지금 북촌한옥마을은 보통 경복궁에서 창덕궁에 이르는 지역을 가리킨다. 백악산과 응봉산을 연결하는 산줄기의 남쪽 기슭이다. 가회동이나 삼청동 정도가 귀에 익지만 원서동과 계동, 재동, 안국동, 소격동, 사간동, 송현동, 화동 등 그 지명도 낯선 11개의 동이 자리한 마을이 바로 북촌한옥마을이다.
무엇보다 지금도 사람들이 실생활 공간으로 삼고 있는 생활한옥촌이라는 점이 특색이다. 한옥들만을 따로 모아 전시 형태로 꾸며놓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영위되고 있는 현장인 것이다. 북촌한옥마을로 인해 서울의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를 통틀어도 생활한옥촌은 전주한옥마을 정도를 제외하면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자연스레 도심과 어우러진 한옥마을의 풍모는 서울이 좀더 각별하다. 때문에 북촌한옥마을에 깃든 사람들의 생생한 숨결을 찾는 즐거움은 남다르다.
민속촌이 아닌 탓에 막연히 북촌한옥마을을 찾아나섰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어디부터 어디까지라고 정확히 마을의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옥의 군락은 자연스레 이어졌다 자연스레 사라져 도심으로 스며든다.
<북촌한옥마을, 가상 투어 파노라마>
360도 회전 입체 영상으로, 마우스나 키보드의 화살표 키를 이용해 확대, 축소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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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진 서울의 미래상
그 가운데 옛 한옥의 정취를 가장 잘 느껴볼 수 있는 지역은 아무래도 가회동 인근이다. 안국역에서 재동초등학교를 지나 가회대로를 따라 오르면 좌우 골목으로 자리한 한옥들이 나오는데 좌측이 가회동 31번지고 우측이 가회동 11번지다. 가회동 31번지 방면으로는 삼청동과 소격동, 사간동을 넘어 경복궁까지 이어진다. 가회동 11번지 쪽으로는 계동과 재동, 원서동을 지나 창덕궁에 가 닿는다.
둘 가운데 어느 쪽 골목으로 접어들든 가회동 지역은 한옥마을의 정수를 맛보기에 손색이 없다. 수백 채의 한옥들이 어깨를 맞대고 붙어 앉았다. 하지만 실상 지금 같은 형태는 1930년도 이후에 만들어졌다. 이전에는 훨씬 큰 터의 한옥들이었다. 당대의 권세가들이 살았으니 그 평수나 한옥의 기세가 더 위풍당당했을 것이다. 그러한 모습은 개화기 초기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1930년대 택지분할을 계기로 지금처럼 비교적 소규모의 한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형태의 한옥마을로 변모했다.
1970~80년대 강남권의 개발로 교육시설들이 대거 이동하고 그 자리에 신축 건물들이 들어서면서부터는 또 한 번 변화의 기로에 섰다. 이후 북촌한옥마을은 보존과 규제 완화 사이를 오갔고, 1994년 고도 제한 이후에는 1500채에 달하던 한옥의 숫자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다행히 1999년 북촌 가꾸기 정책들이 수립되면서 한옥 보수 지원 등의 정책으로 다시금 한옥마을로 보존되기에 이르렀다.
북촌은 근래 들어 우리 전통 한옥의 매력이 재발견되면서 새로이 주목받고 있다. 한옥 갤러리나 전통 공방 등도 늘어났고 한옥을 개조한 한옥 레스토랑도 여럿 자리하면서 이색적인 한옥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 틈새마다에는 조선 역사를 대변하는 무수한 역사 유적과 흔적들도 자리한다. 특히 계동과 원서동 일대는 중앙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자취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편 한류 열풍의 근원인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일본 관광객들의 방문이 잦은 곳이니 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옛것과 새것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뤄 발전해나가고 있는 북촌한옥마을.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이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새로 발견하고 자긍심을 갖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옥 게스트하우스, 가상 투어 파노라마>
360도 회전 입체 영상으로, 마우스나 키보드의 화살표 키를 이용해 확대, 축소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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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3경에 해당하는 개방 한옥 한상수자수박물관의 입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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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5경에 해당하는 가회동 31번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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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 31번지 골목의 언덕배기에서 내려다본 한옥과 서울시 전경은 북촌 6경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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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7경 한옥 골목에 자리한 어느 한옥의 고풍스러운 대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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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 11번지 일대에 자리한 가회박물관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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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진단학회가 있었던 락고재는 현재 한옥 게스트하우스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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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옥의 대문에서 만나지는 예스러운 문고리가 북촌의 운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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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촌이 아닌 실제 생활이 이뤄지고 있는 공간임을 증명하는 한옥 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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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가로수와 어우러진 소나무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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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미술관 앞에 있는 구본주의 '비스킷 나눠 먹기'는 시민들의 벤치로도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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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한옥마을에는 역사의 흔적도 많다. 사진은 원서동에 있는 금위영 터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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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음식연구원 가는 골목에 자리한 원서동의 한적한 골목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