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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경기장은 1965년 건립 이후 45년 동안 광주․전남 시․도민들의 삶 속에서 애환과 기쁨을 같이 한 장소이며, 스포츠를 통해 시․도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 역사적인 장소이다.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가 건립된 무등경기장 터는 본래 하천부지로서 한국전쟁 직후까지는 피난민촌이었다. 6․25 전쟁 중인 1951년에 제32회 전국체전이 광주에서 열렸는데 당시 주경기장은 서중학교 운동장이었다.
이 경기 이후 공설운동장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전쟁 후인 1954년 당시 전남도지사가 시유지 일부와 전남방직 소유지 일부를 포함시켜 현 무등경기장 위치에 토담 형식으로 운동장을 건립했다.
1965년 9월 제46회 전국체전을 위하여 공식적인 경기장(주경기장과 야구장)을 건립하였는데 당시 명칭은 ‘광주공설운동장’이라고 불렀다. 당시 사업비는 시민성금 7140만원과 국․시비 및 대한체육회 보조금을 포함한 1억2000만원이 소요됐다.
1977년에는 제58회 전국체전을 위해 증축과 리모델링 등 시설 보강을 하고 ‘무등경기장’으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간 중에는 계엄군의 과잉진압에 격분한 운전기사들이 항쟁 참가를 선언하고 무등경기장 정문에 모여 시내버스와 택시 등 100대 이상의 차량이 경적을 울리고 전조등을 비추며 금남로로 향하는 시위를 시작하였는데 그로 인해 무등경기장 정문은 5․18 사적지(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
1984년 5월4일 교황 요한바오로2세가 무등경기장을 방문해 ‘화해의 날’ 미사를 집전하면서 1980년 5월 비극적인 사태로 아픔을 겪은 광주 시민들의 마음에 화해와 용서의 은혜가 내리길 기원한 곳이기도 하다.
2010년 12월 새 야구장을 무등경기장 종합운동장에 건립하기로 발표하면서 비록 건물은 철거되어 사라지지만 광주시는 성화대를 중심으로 건물 일부를 남겨 야구박물관으로 리모델링함으로서 역사성과 장소성의 의미를 부여하기로 하였다.
마침내 무등경기장 종합운동장은 2011년 11월 새 야구장 착공과 함께 일부만 남긴 채 철거되었고, 28개월의 공사과정을 거쳐 새 야구장이 건립되면서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에게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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