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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성 덕 광주화정교회 담임목사 |
언젠가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1950년대 중반에 결혼식을 올리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어머니는 한복을 입으셨고, 머리에는 하얀 면사포를 쓰셨습니다. 전통 의복과 서양 의복이 혼용돼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양복을 입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어렵던 시절 아버지는 양복도 입으시고 세련되셨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결혼 전날까지도 양복을 구하지 못해서 고민이 많았는데, 그 어려운 사정을 아시고 동네 교회 목사님이 양복을 빌려 주셔서 그걸 입고 결혼식을 한 거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양복이 어딘가 아버지에게 잘 맞지 않게 보였습니다. 양복 한 벌이 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옷이 흔한 시대지만, 그 옛날에는 옷이 귀했습니다. 지금은 옷을 물려 입는 경우가 드물지만 옛날에는 옷을 물려 입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요즘 어른들이 가끔 이런 말을 하십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옷이 귀한 줄 몰라. 입을만한 옷들을 그냥 버리는 경우가 있어”라고. ‘입을만한 옷들’이란 말이 주관적인 판단이기에 절대 평가의 기준은 아니지만 옷이 흔하다 보니 버리는 옷들도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버리는 옷들이 있으면 사야 하는 옷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면 버릴 옷은 버리고 사야할 옷은 삽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내가 버릴 것이 무엇이고 입을 옷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성경 골로새서 3장 5, 8, 9절에서는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과 서로 거짓말을 하는 것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보면서 ‘우리들이 버려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버릴 것들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분함, 노여움, 악의, 비방, 부끄러운 말, 거짓말 등은 우리에게 모두 관련되는 항목들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지난 주에도 누군가와 싸우고 말다툼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부끄러운 말로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를 비방했을지도 모릅니다. 음란했을지도 모릅니다. 분을 내고 탐심을 내고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지난 일 년간 우리는 더 많은 시간 속에서 더 많은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새 옷을 입으려면 더러운 옷은 벗어 버려야 합니다. 단절(斷絶)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대나 연관 관계를 끊는다는 말입니다.
2014년에 잘못된 나의 모습들이 2015년에도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절’되는 모습을 보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새해에 입어야 할 옷은 무엇일까요?
성경 골로새서 3장 12절에서 “…너희는…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라고 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13절에서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서로에게 불만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14절에서는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피차에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 사랑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난히 추울 거라는 올 겨울에 우리 몸은 추위를 느껴도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만은 따뜻해지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행동도 따뜻하고, 말도 따뜻하게 돼 있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좋은 것들로 새 옷을 입고, 밝게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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