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 즐겨찾기 전체기사 게시판
뉴스그룹엔지티비
편집 : 2026.11.6 금 12:45
기독방송국호남미션
희생·봉사의 롤 모델로 기억되는 '보위렴'병자·고아·나환자 돌봄사역에 전념…괴한 습격으로 죽을 고비 넘기면서도 하나님 주신 사명·사역 붙들어 눈길
강경구 기자  |  ngtv@ngtv.tv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1.23  16:26:4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블로그 구글 msn
   

누구를 위한 선교였는지 보여준 포사이트
포사이드가 지났던 길은 검정 조랑말을 타고 60마일이나 되는 먼 길이었다. 목포에서 무안, 영산포, 나주를 지나 효천에 이르는 4월 초입으로 아직은 섬득한 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었을 길이었다. 당시 선교사들에게 알려져있던 뱃길이 아닌 육로를 활용했던 이유는 동료 의사며 선교사였던 포사이트의 병세가 위독했고 뱃길로는 출발할 수 없는 긴박함이었을 것이라고 광주선교사 전문가인 양국주 선교사는 말한다. 인가가 드물었을 한적한 길, 영산강과 나란히 때로는 뒤로하고 호젓한 길을 거슬러 효천역까지 동료 선교사의 위급한 폐렴을 치료할 일념으로 달려가는 길이었다. 그러던 그 앞에 한센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련한 환자가 추위와 고통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를 위한 선교였는지... 무엇을 향한 선행이었는지... 한국기독교 130년이라는 거대한 흐름앞에 서있는 한국교회를 향해 포사이트의 삶은 일일이 답해주고 있다. 4월 봄이 한창이었을 광주땅으로 향하는 포사이트의 눈앞에 보인 한반도의 남도땅... 지금은 백년이 넘어버린 거대한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밖에 없지만 희망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고귀한 희생과 헌신이 기반이 되고 있는 희망이라면 말이다.

심각한 부상을 이겨내면서까지 한반도에 나눈 사랑
포사이트 선교사는 5년간 한반도에 머물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고아와 과부 그리고 한센병 환자를 위해 목숨을 건 한편의 드라마 같은 사역을 펼쳤다. 1873년 12월 25일 켄터키주 머서주에서 출생한 그는 웨스트민스터 대학을 졸업했고, 1904년 한국 의료선교사로 파송되었다. 한국에 파송되기전 쿠바와의 전쟁기간동안 군의관으로 활동했으며, 제대후 병원 근무중 뉴욕의 빈민가에서 의료봉사를 실천하기도 했다. 주머니안에 든 돈을 빈민들에게 다 써버릴 때가 많았다고 한다. 뉴욕에서의 수련과정을 마치고 캔터기 주 랙싱턴으로 돌아와 병원을 개업했지만 모든 것을 정리하고 1904년 8월 10일 한반도를 향하는 배에 올라 9월 29일 전주에 도착했다. 전주에서의 첫 사역은 고아들을 위한 무료 의료 봉사였다. 전주예수 병원 2대 원장으로 그는 당시 말골(당시 동학혁명이 발발했던 말목장터 근방)마을에서 무장한 괴한들의 칼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치료해주다가 그역시 총칼로 무장한 괴한에게 습격당해 귀가 잘리고 측두골이 깨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후유증로 인한 고통은 그의 남은 삶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치료차 미국으로 갔다가 l908년 3월 말에서야 다시 목포로 파송됐지만 이 소식을 접한 전주지역 사람들은 그의 목포행을 적극 반대하며 다시 전주로 보내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는 1000장의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병든자, 노약자, 버림받은 자, 나환자를 위해 주어진 삶을 살다간 포사이트에게 전주 지방 관찰사에서부터 지게꾼에 이르기까지 1000명이 낸 탄원서에는 충직하고, 사랑스럽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포사이트를 그리워하고 있다.

풍토병인 스프루에 감염되어 끝내 귀국후 별세
포사이트의 열정은 한국 사역도중 스프루 라는 풍토병에 감염되어 더 이상 활동할 수는 상황에 이르렀다. 끝내 미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끊임없이 괴롭히는 장 통증과 측두골 부상으로 인한 두통이 그를 괴롭혔지만 미국 생활중에도 7년간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한국 선교에 대한 당위성과 한센병으로 고생하는 광주의 환우들을 위한 모금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결국, 그는 귀를 잘린 후유증과 풍토병을 이기지 못하고 1918년 5월 9일 45세의 나이로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광주 한센병원의 환자들이 그를 못 잊어 십시일반으로 모금한 금액으로 9척 크기의 기념비를 세운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그런데 어느날 놀랍게도 포사이트 선교사의 비석이 사라졌다고 한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포사이트 선교사의 삶에 감동한 한센병 환자들이 밤시간을 이용해 달구지를 끌고 광주에서 여수 애양원까지 비석을 옮겼다고 한다. 열방을 섬기는 사람들 대표인 양국주 선교사는 “포사이트 선교사가 별세한 뒤 기념비는 원래 광주에 세워졌지만 1926년 광주 시설로는 늘어나는 나환자 수를 감당할 수 없어 여수 율촌면에 새 나환자촌이 만들어졌어요. 그때 나환자들이 비석을 일주일간 지고 메며 130㎞를 걸어 그것도 밤시간만을 이용해 여수까지 옮겼답니다. 포사이트 선교사를 기념하고자 한 것이죠.”
그 머나먼 길을 걸었을 한센병 환자들의 마음안에는 무슨 생각들이 자리하고 있었을까? ‘나병’이라는 천형의 벌을 평생 가슴에 묻고 울어도 울어도 씻어지지 않는 한과 아픔을 닦아주며 안아주었던 포사이트를 쉽게 잊을 수 없었다. 가슴 따스하게 위로해주던 친구이며 이웃이었던 포사이트가 하늘나라로 떠난 1918년 이후 한센인들의 가슴안에 남아있었던 그에 대한 뜨거운 존경과 사랑이 사람들의 낯을 피해야 했기에 여수를 향해 밤을 이용한 기나긴 행렬을 만들었던 것이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던 포사이트의 사랑에 대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모습으로 답장을 보내준 것이다. 그 기념비는 애양원 뜨락에 100년을 세워져 묵묵히 여수땅을 바라보고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 포사이트가 주고간 사랑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칭송되는 포사이트는 1910년경에는 목포의 변요한 선교사와 함께 제주도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매일 400~500명씩 진료했다고 한다. 포사이트 선교사는 제주 의료선교시 동행한 조수들 중 일부를 제주도에 남겨두고 진료에 힘쓰도록 했을 정도로 가난한 자와 병든 자, 특히 나환자들을 돌보는데 삶을 아끼지않고 헌신했다. 계속되는 제주도 의료봉사 활동은 이기풍 목사가 제주도 지역에 1908년 입성후부터 제주지역에 불어닥친 복음화의 열풍과도 무관하지가 않을 것이다. 포사이트 선교사가 5년동안 남긴 헌신적인 사랑은 한센병 관리사업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로서는 의술이나 의료 환경적인 측면에서 많은 도전을 받았으며, 선교가 국가의 시책을 주도하며 당시 사회적인 여론을 압도하여 복음의 가치를 사회전반에 포괄적으로 남기는 중요한 소통의 역할을 담당했으며, 사회적인 약자였던 소외되고 혐오스러웠던 환자들을 위해 살신성인 하는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을 보여주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이제 한국과 광주의 교회들은 좀 더 구체적인 사회복음의 혁신적인 방안들을 내놓아야 한다. 좀 더 구체적이고 좀 더 희생하는 모습으로 사회의 발전과 계층간 소외를 극복해낼 수 있는 봉사의 롤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십이 지금 한국과 광주 교회에는 너무도 절실하다고 밖에...


< 저작권자 © 엔지티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기사제보 및 문의 ngtv@ngtv.tv >
강경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실시간뉴스
인기뉴스
1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시민참여연대, 이승훈 민주당 전국소상공인위원장 "지역 경제 살릴 적임자" 강한 기대
2
이용섭 부영그룹 회장, "출산지원은 기업과 국가의 최우선 투자"… '1인당 1억 원' 파격 결단으로 인구위기 극복 이끈다 !!
3
[영상]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시민의 날’ 7월 1일 지정 추진 !!
4
장성군, “다름이 같음이 되는 시간”... ‘다문화가족 한마음축제’ 개최
5
손훈모 순천시장,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순천사업장 준공…남해안 우주산업 협력 기반 확대 !!
6
장흥군 과학기술서기관 김대중, "더 안전한 통합소방본부, 장흥에서 시작하자"
7
화순군, 행안부 주관 ‘2026년 소하천 정비사업 우수사례’ 선정
8
제주도, 국회입법조사처에 주요 입법과제 협력 요청 !!
9
강진원 강진군수, ‘강진-광주 고속도로 30분 시대’··· ‘반반 강진’으로
10
[영상]전남광주 도시철도건설본부, 도시철도 2호선 홍보TF 가동 !!
신문사소개ㆍ기사제보ㆍ광고문의ㆍ불편신고ㆍ개인정보취급방침ㆍ청소년보호정책ㆍ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주 : 제주도 서귀포시 중산간동로 7386-44 (064) 702-0958  |  광주광역시 동구 동계천로 150 광주아이플렉스 411호
대표전화 : 062-374-8880  |  HP : 010-4125-1236  |  등록일: 2011년 6월 20일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광주 아 00080
뉴스그룹엔지티비 (NGTV)  |  대표 : 신진혁  |  발행편집인 : 신정욱  |  기자단 회장 : 임이엽  |  방송위원장 : 김창용
제주방송국 대표 : 송승의  |   담양·함평·영광·장성방송국 총괄대표 : 최재록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정욱
Copyright ⓒ 2011 뉴스그룹엔지티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gtv.tv
뉴스그룹엔지티비를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