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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여수 예울마루에서 ‘물꽃바다 展‘을 마친 장창익 작가를 만났다.
장창익 작가는 근현대 호남 화단을 대표하는 남농 허건(許楗)의 문하생으로 사군자를 배우고 추계예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면서 화단에 발을 들였다.
작가는 ‘야생화 화가’로 유명하지만 그의 작업은 변화무쌍하다. 작업초기인 8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 이전의 작품들은 강렬한 오방색의 색채와 토속적인 소재를 사용하였고 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는 목판작업에서는 통일염원과 같은 민중의 애환을 담기도 했다.
현재의 그가 주로 화폭에 담아내는 것은 꽃과 나무, 풀과 바람이다. 21살 군대에서 훈련도중 지뢰를 밟아 왼쪽 눈과 한쪽 다리를 잃고 그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온 작가에게 꽃은 피워보지 못한 젊음이자 자신의 심적 치유를 도왔던 대상이기도하다. 특히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라나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야생화는 작가에게 더더욱 그러하다.
그림을 통해 시련을 딛고 삶을 살아가는 용기와 에너지를 전달하는 장창익 작가는 그간의 인고와 역경의 시간을 ‘천형(天刑)’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아직도 작품에 대한 갈증과 열망하고 있다고 했다.
1. 여수 예울마루에서 ‘물꽃바다(1.15~2.8)’ 개인전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찬사와 성원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전시를 마친 소감은 어떠신지?
솔직히 찬사와 성원은 실감하지 못하겠다. 아직 작업에서 해결하지 못한 부분들만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 뿐 이다. 초대전을 진행하면 실마리가 잡힐 것이라 생각 했는데 오히려 더욱 혼란이 커진 것 같다. 신중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해서 실험 작업을 해 왔던 작품들에 대해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 생각한다.
2. 강렬한 색채와 토속적인 소재를 사용했던 작업초기부터 야생화를 소재로 하는 현재까지 스타일이나 방식 면에서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그 중, 꾸준히 목판화 작업을 해오셨는데 작가님께 목판화의 매력은 무엇인가?
목판화의 매력은 많다. 여타 다른 판화와 비교 했을 때 공정이 단순하고 동양화와 많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구륵법(鉤勒法)을 즐겨하는 입장에선 목판화의 선은 동양화의 선과 동질성을 갖고 더불어 목판채색을 즐겨하는 입장에선 더욱 그러 하다. 칼을 들고 작업하는 것은 전각(篆刻)과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한 가지 더 첨언 한다면 Original Multiple 개념은 선을 찍고 공간을 다양한 색감으로 표현하는 재미가 있다.
3. 현재의 야생화를 소재로 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의미가 있으신지?
화선지 수묵과 수묵채색을 15년 정도 작업을 하다 결혼 후(45세 결혼) 밀도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 장지를 선택 했는데 수묵채색과 소재에서 부터 차별성을 가져야하는 재료적 특성이 있었다.
고민하고 있던 중 집사람이 도시락을 싸서 작업실로 가져 오는 길에 매화꽃 한 가지를 꺽어와서는 화병에 꽂았는데 문득 과거에 공부했던 관념적 그림들(사군자)을 현대적 재해석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의 계승발전이라는 화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꽃을 좋아하는 집사람의 영향으로 꽃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특히 척박한 환경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야생화에 애착을 갖게 되었다. 아직 적극적으로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바다와 서예를 바탕으로 하는 문자추상을 함께 작업하고 있다.
4. 남농 허건 선생님께 사사를 받았다고 알고 있다. 스승님께 받은 가장 큰 영향은 무엇이었나?
전업 작가의 작업에 임하는 자세이다. 말로 설명하진 않으셨지만 붓을 놓고 계시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사군자 기초를 공부하고 산수화를 시작하려는데 채본을 해주시지 않아서 요청을 드렸는데 "너는 너의 그림을 그려라 내 그림 흉내 내지 말고..." 라고 하셨다.
그땐 참 서운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의 그 말씀 때문에 자유로운 내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5. 동양화에 입문하고 사군자를 터득하기 위해 한 달 평균 500~600장씩 그림을 그렸다고 했는데 정말이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 오기와 끈기의 근원은 무엇인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 후 군 입대 전 까지 그림을 배워 본 적이 없다. 중고등 시절 실기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고 잘 그린다고 주변에서 말을 했었다. 군 재대 후 고민이 많았는데(자살이라는 놈이 유혹할 만큼) 동양화를 하면 지원을 해 주신다는 큰형님의 말씀을 듣고 탈출구로 동양화를 선택 했다.
첫 제자 입문 요청엔 거절 하시고 두번째 요청에 허락 하시면서 난을 쳐 주셨다. 그러고는 “똑 같이 그려 오거라.” 하셨다. 나름 그림을 좀 그린다고 생각 했었는데 엉망 이었다. 젊은 자존심이 무너졌고 오기가 생겼다.
똑 같이 그릴 때 까지 그려 보자는 오기였다. 사군자를 그렇게 공부 했고 나중에 보니 화선지 전지를 한 달에 5-600장을 시커멓게 연습을 했더라. 그때에는 그림 그리는 일이 그 어떤 일 보다도 재미있었고 존재를 확인 시켜주는 일이라 생각 했다.
6. 힘든 시기와 역경이 있었기에 작가님의 작품에 그만큼 많은 감동이 전해진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본인만의 방법을 전해주실 수는 없는지?
자기에게 주어진 고난 역경 고통이 제일 크게 느껴지리라 생각한다. 경중의 느낌도 자신의 경험에서 오는 것이다. 할 줄 아는 것이 그림 그리는 일 뿐이라서 어떤 상황에서건 주어진 조건에 맞는 작업을 했다.
슬플 때도 외로울 때도 고통이 있을 때도 그 감정 그대로 그렸다. 회의도 있었지만 밥 먹는 일처럼 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자주 보는 글귀이지만 맞는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 지나간다.
7. 인생에서 가장 아끼고 소중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물론 사모님을 포함한 가족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가족을 제외한 다른 것을 부탁한다.
‘자존심’이다. 죽기보다 싫은 것이 자존심이 무너질 때 이다. 그리고 음악이다. 악기 연주는 할 줄 모르나 듣는 것은 정말 좋아 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 장 씩 모아놓은 LP를 지금도 4-5000장 가지고 있다. 요즘엔 컴퓨터와 오디오 연결해 외장하드에 가득 담아 음악을 듣는다.
8. 많은 사람들이 작가님의 아름다운 야생화를 보며 심적으로 힐링(healing)을 얻는다. 팬들을 위해 2015년도 전시나 다른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해 달라.
3월 중 광주시립미술관에서 2015 민주인권평화전(단체전) 있다 그리고 서울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8-9월 경 초대전도 준비하고 있다. 이제 다시 한 번 작업의 변화를 가져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고민의 시간을 충분히 갖고 싶다.
장창익 작가는 200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올해 여수 예울마루 물꽃바다展까지, 총 17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2013년에는 ‘올해를 빛낼 작가’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작가가 작품에 임하면서 그랬듯, 앞으로 더욱 많은 관람객들이 작가의 작품을 통해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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