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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도지사 이낙연)는 안중근 의사를 배향한 장흥 해동사(海東祠)를 도 문화재자료로 지정예고 했다고 30일 밝혔다.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121(만년리)에 있는 해동사는 안중근의사(1879~1910)를 배향한 사우로는 처음 건립되었다. 이번 도문화재자료 지정예고는 단독 배향사우로는 유일하여 순국 105주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역사 가치를 재평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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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라남도(도지사 이낙연)는 안중근 의사를 배향한 장흥 해동사(海東祠)를 도 문화재자료로 지정예고 했다고 30일 밝혔다. |
1984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71호로 지정된 만수사(萬壽祠)에 포함되어 지정됐다. 당시 문화재명칭은 '만수사'였으나, 장흥군에서 소유자와 협의 하여 "해동사"를 포함하도록 문화재 명칭 변경 신청를 제출, 도 문화재위원회에서 역사적 가치를 평가하여 분리해 지정하기로 한 것이다.
해동사는 광복 전후부터 건립이 논의되다가 1955년에 장흥 유림과 죽산안씨 문중의 발의로 건립하게 됐다. 당시 안의사의 큰 딸 안현생(당시 대구 가톨릭 교사)과 조카 안춘생(당시 육군 소장)이 영정과 위패를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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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5년 10월 27일 안중근 의사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장흥대교를 지나고 있다. 안 의사의 큰딸 안현생이 영정을 안고, 조카 안춘생이 위패를 들었다. <사진= 안종복> |
처음 건립한 해동사는 사방 1칸의 규모이며 2006년 중건한 해동사는 3칸 팔작지붕집으로 편액 "해동명월(海東明月)"은 당시 대통령(이승만) 글씨라 전한다.
안중근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조선 초대 통감으로 한국침략의 원흉인 이또 히로부미(伊藤博文)을 격살한 의거의 주인공으로 대한 남아의 기개와 민족정신을 전 세계에 떨쳤던 인물이다.
1990년 2월에 여섯차례의 재판을 거쳐 2월 14일 사형언도를 받고 3월 26일 뤼순(旅順) 감옥에서 순국했다. 사형 판결 뒤 집필한 '동양평화론'은 동양 평화 실현을 위한 논책으로 미완성이지만 죽음을 앞둔 시기의 저작물로서 현재까지도 중요한 평가를 받는다. 1962년 정부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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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5년 10월 27일 안중근의사 위패를 봉안하고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안종복> |
해동사는 앞으로 30일간의 지정예고를 한 뒤 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도 문화재로 지정고시하게 된다.
전라남도에서는 앞으로 해동사를 비롯한 독립운동 사적지와 국난극복 유산을 활용하여 민족통일과 동양평화, 대중국 관광을 비롯한 문화관광 명소, 그리고 청소년 교육의 공간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한편, 만수사는 고려시대 유학자 안향(安珦, 1243~1306)선생과 조선시대 학자인 안중묵 등 죽산안씨 선현 4위, 그리고 조선시대 문관인 주세붕선생을 배향하고 있다. 만수사와 해동사의 제향일은 4월 30일(음 3월 12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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