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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 송재춘 기자 ) 지난 2006년 6월! 베트남 하이퐁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한국으로 시집온 도예진(29)씨와 전북 진안군 주천면 임문규(50)씨는 결혼생활 3년만에 세상에서 둘도 없는 종혁이를 낳았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와 가면서 남편은 가스배달을 하며 그야말로 열정을 가지고 꿈에 그리던 한국생활의 신혼을 즐겼다.
그렇게 지나간 3년여의 세월속에 남편의 사업은 갈수록 자금난에 시달리고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남편은 갑자기 속이 안좋다며 병원에 입원을 했다.
뜻밖에도 남편의 진단결과는 위암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을 받았다. 3년만에 귀한 아들 종혁이를 낳은 기쁨도 잠시 아내인 도예진씨는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다행히 남편은 위암 초기에 수술은 잘 끝나고 회복중에 또다시 그에게 시련은 다가왔다. 베트남에 계신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남편의 병중에 그는 정신없이 아버님의 상을 치루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남편의 병 시중을 들어가며 시골 농사일에 종혁이 뒷바라지에 가사에 사력을 다해 일 해왔다.
그런던 중 그에게는 또다른 시련이 다가왔다.
시름시름 당뇨와 합병증으로 고생해오신 시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또다른 고통이 시작이 됐다. 이젠 도예진씨의 각오가 더욱 단단해졌다.
아들 종혁이를 돌봐줄 친정어머니를 베트남에서 모셔 오기로 하고 가정을 꾸려 나가기 위해 도예진씨가 진안의 한 김치공장에 취업을 했다. 남편과 아들 종혁이와 친정어머니를 생각해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의 몸이 또 심상치 않았다.
급히 병원에서 종합진단을 받은 결과 뜻밖에도 척추에 골수암이 온 몸에 전위가 되었다는 사실에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그는 지금 모 대학병원 암센타에서 수 차례의 항암 치료와 함께 열심히 치료를 받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온몸이 제 기능을 할 수가 없다.
안타까운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임문규씨는 몸이 많이 부어 있었다. 그는 그저 누워만 있을 뿐 말이 없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는 말 문을 열었다.
임문규씨는 부산 해양고등학교와 해군을 전역하여 원양어선에 승선, 조금의 돈을벌어 진안에 와서 조그만 아파트를 구입하여 “장모님과 함께 행복하게 농사지으며 살고 싶었는데 이렇게 몹쓸 병에 걸려 할말이 없다.”며 지금까지는 아파트 전세금으로 치료비에 보탰는데 이제 그나마 바닥이 나고 시골에 논 두마지기라도 팔아야 할 형편이라며 두손을 꼭잡고 눈시울을 적셨다.
그의 작은 일기장에는 “오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서서히 정리하여 아쉬움 없는 마무리가 될 수 있게 하자. 힘이 많이 든다. 가슴이 멍하다“고 적혀 있었다.
임문규씨에게 도움을 주실분은 503086-52-035000(농협 임문규)로 하면된다.
/ 전북 진안우체국365봉사단장 박주용 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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