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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지내노라면 좀처럼 눈을 들어 하늘을 보기도 쉽지 않다. 도심 속 빽빽한 건물에 눈길이 가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하지만 가끔 서울 광화문 부근을 지날 때면 교보생명 빌딩에 걸려 있는 대형 글판이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광주에 있는 같은 회사의 건물에도 걸려 있는데, 계절마다 새로운 글로 옷을 갈아입는 광화문 글판이 벌써 25년이 되었다고 한다.
최근 서울 출장길에 광화문에 들렀다가 확인한 것에는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란 시구(詩句)가 걸려 있었다. 짧은 글이지만 깊은 울림을 주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천천히 음미하며 글을 읽다 보면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도 든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란 말은 이제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통계에 의하면 가을은 책 판매량이 다른 계절에 비해서도 저조하다. 이유는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기후 변화로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책보다는 맑은 하늘과 고운 색으로 물들어가는 단풍을 구경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독서량은 가을에만 줄어든 게 아니다. 사람들이, 특히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점점 책과 멀어지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높다. 지난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이 9.2권, 월 0.76권으로 한 달에 책 한 권을 채 못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1위의 보급률을 자랑하는 스마트폰이 독서량 감소의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유비쿼터스한 콘텐츠 환경이 형성되면서 수시로 이용 가능한 간결하고 짧은 콘텐츠 소비가 증가했다. 대신 긴 호흡이 필요한 독서가 상대적으로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판시장에서도 장편 소설보다 짧은 소설이 등장해 인기를 얻어 가고 있다.
스마트폰이 일상을 지배하게 되면서 출퇴근길의 풍경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거나 책을 꺼내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나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귀한 풍경이 되었다. 모두가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의 액정만을 보고 있어 ‘수그리족’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해 초 ‘2015 콘텐츠산업 10대 트렌드’를 분석해 발표한 바 있다. 그 중 첫째 트렌드가 바로 ‘스마트 핑거 콘텐츠’의 유행이었다. 어디서나 쉽고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스낵컬처’(snack culture) 시대에 손가락 하나를 까딱하는 최소한의 행위로 즐거움을 소비하는 콘텐츠 소비행태가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이용해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것은 물론이고 시도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소비를 하고, 10분 내외의 짧은 영화나 웹드라마, 그리고 웹툰이 더 큰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한다. TV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도 짧게 잘라 놓은 클립 영상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즐기는 게 보편화될 것이다.
스마트 핑거 콘텐츠 소비가 늘면서 관련 콘텐츠의 업그레이드와 진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단순하게 보는 것을 넘어 오감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한 웹툰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화면이 움직이고 소리도 나는 웹툰과 줌인·줌아웃이 가능한 ‘스마트툰’도 등장을 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읽는 웹소설도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따르면 지난 2014년 한 해 동안 웹소설을 올린 작가 수는 6만 7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책을 읽지 않는다고 걱정을 하지만 웹소설로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직접 책을 쓰는 작가들까지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이어령 선생은 우리의 반도체와 휴대폰 등 정보통신 산업이 세계적 성공을 거둔 배경에 섬세한 손놀림을 가능하게 만든 젓가락 사용 문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젓가락을 사용하는 게 바로 손가락이다. 스마트 핑거 콘텐츠 시대의 트렌드를 잘 읽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한다면 우리가 IT에 이어 콘텐츠 산업에서도 세계적인 성공을 일궈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책을 안 보고 스마트폰만 본다고 너무 나무라지 말자. 책 읽기도 중요하지만 스마트폰을 터치하는 손가락에도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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