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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광역시의회 신수정 의원은 2월26일 오후 2시 시의회 4층 대회의실에서 '광주.전남 항일독립운동 속의 여성들'을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의 토론자로 참석했다 |
신수정 의원(더불어민주당, 북구 제3선거구)은 26일 광주광역시의회 4층 대회의실에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광주•전남 항일독립운동 속의 여성들’이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안진 전남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가 좌장으로 시작 되는 심포지엄은 이경순 전남대학교 명예교수의 ‘여성독립운동가 어떻게 발굴할 것인가’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과 주제발표, 토론 등으로 진행된다.
명진 (사)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 광주지회장이 ‘광주•전남 항일독립운동과 여성의 참여’, 홍인화 전)광주광역시의원이 ‘광주만세독립운동에서 수피아여학교에 역할에 대한 고찰’ 주제로 발제했다.
발제 후 진행된 토론회는 신수정 광주광역시의원, 서금석 (재) 한국호남진흥원박사, 김홍길 전남대학생독립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임수정 광주여성재단연구위원이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신수정 의원은 “3.1운동 관련 문화유산 발굴 및 보존 노력이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도록 조례 제정 및 시청과 협력하여 예산 확보를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며, ”또한, 3.1운동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전문영역을 담당할 연구진과 관련 단체자 분들과 함께 테스크포스(TF)단을 구성하여 3.1운동 관련 연구활동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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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수정 광주시의원 |
▲ ‘광주전남항일독립운동과 여성의 참여’에 대한 토론문
신수정(광주광역시의원)
올해는 3.1 운동 100주년이자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다. 1919년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전 세계에 천명한 쾌거였다.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으로 이어졌다.
3.1운동으로 민족의 저력을 확인한 이후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항일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우리 민족은 3.1운동으로 그토록 원했던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 했지만 대내적으로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우리 민족의 의지를 더욱 굳건히 구축하였고, 대외적으로 우리 민족이 일제의 통치를 맹렬히 거부한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발제문에서 정리되어 있듯이 3.1운동 과정에서 여학생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민족교육을 통해 민족의식과 지성인으로서 사명감을 가진 여학생들은 3.1운동 이후 시기에는 합법적인 조직 활동과 더불어 비밀결사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조직을 바탕으로 학생들은 일제의 식민통치와 식민지 교육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다. 당시의 학생운동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연계 속에 진행되었듯이 여학생들의 조직도 그런 영향으로 다양한 운동을 전개했다.
발제문에서는 광주전남지역의 항일독립운동에서 여성의 참여를 정리하고 있다.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발굴과 연구는 매우 열악한 수준이라는 점은 독립유공자 서훈자 수치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발제자도 밝혔다시피 조사된 기록을 중심으로 살펴본다는 것에 한계가 있는 것이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지속되는 한편 묻혀있는 사례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서 엄혹한 시절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여성들이 발굴되어져서 합당한 예우를 받고 후세의 귀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한 점에서 향후 보완되었으면 하는 부분과 광주의 3.1운동과 관련된 유산의 발굴과 보존 사업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토론을 진행하고자 한다.
첫째로 향후 보완되었으면 하는 부분이다. 항일학생독립운동 이후 즉 1930년대 40년대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시정부관련이나 광복군 관련으로 해서 대표적인 사례가 언급되고 있지만 보강되어져야 하겠다.
자료의 부족이 가장 큰 난관이 되겠지만 지역에서 자료가 없다면 임시정부나 광복군 관련 전국적인 자료에서 출신지역이나 활동루트 등을 역으로 추적해서 광주·전남의 내용을 찾아내는 것도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한다. 또 하나는 신사참배와 관련한 저항운동의 정리도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수피아여학교의 경우도 1937년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학교를 폐교했던 것이며 일제말기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것은 가장 강력한 항일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기독교 계통의 학교나 교회사 등의 역사자료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둘째는 광주3.1운동 백주년을 계기로 의향 광주의 유산이 발굴되고 보존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강조를 드린다.
광주3.1운동 발원지는 양림동이다. 이곳은 광주의 갑부들이 터를 잡고, 미국 선교사들이 둥지를 틀면서 수피아 여학교, 숭일학교가 개교한 지역으로 서구사상과 자주의식이 강한 곳이다. 따라서 3.1만세 운동 역시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발화되어 광주 전역으로 번져갔다.
지난 2011년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실시한 항일독립운동사적지 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광주와 전남 지역에서 3.1만세투쟁 관련사적지는 4개 인 것으로 나타났다.
몇 몇 유적지는 건물 흔적조차 찾을 수 없거나 역사적 사실을 알려줄 안내판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특히 광주 3.1만세투쟁의 혁혁한 공로가 있는 광주숭일학교에 대한 기억 작업은 시급하다고 본다. 숭일학교 교사•학생들이 시위를 준비한 숭일학교 터 인 양림동 무등파크아파트에는 별다른 역사적 기억장치가 아무것도 없다.
시위 당시 배포된 ‘조선독립광주신문이’이 등사된 제중원(현 광주기독병원) 건물도 남아있지 않고 기독병원에는 병원 역사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3.1만세투쟁관련 사실을 확인 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광주의 3.1운동 관련 문화유산들을 참여 인물이나 기관과 연관성이 있는 전시시설, 사적지, 기념물을 포함하면 총 26곳이다.
광주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 등을 인쇄했던 ‘최한영의 집터’와 광주 3.1운동을 주도한 한 축이었던 신문잡지종람소가 둥지를 품었던 ‘옛 적십자병원(이전 사립측량학교 터)’, 숭일학교와 더불어 핵심으로 참여했던 당시의 농업학교 터, 최초만세 시위지였던 광주교 밑 모래시장(큰시장 터), 광주3.1운동 당시 체포•구금되었던 광주경찰서 자리도 추가되었으면 한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은 ‘새로운 출발점이다’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새로운 논저를 내놓으면서 3.1운동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연구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3.1운동 관련 문화유산 발굴 및 보존 노력이 활발하게 전개돼야 한다. 3.1운동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그 참여 인물이나 기관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고, 의미가 있다면 광주.1운동에 대한 풍부한 ‘스토리 텔링’ 소재가 될 것이다.
만약 3.1운동이 없었다면, 그리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없었다면 광주•전남의 독립 운동사는 정말로 초라했을 것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광주전남의 독립운동사를 다시금 정리하고, 독립운동의 소중한 정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역사현장 발굴•보존이 절실하다.
시의원으로서 3.1운동 관련 문화유산 발굴 및 보존 노력이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도록 조례 제정 및 시청과 협력하여 예산 확보를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
또한, 3.1운동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전문영역을 담당할 연구진과 관련 단체자 분들과 함께 테스크포스(TF)단을 구성하여 3.1운동 관련 연구활동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
다가오는 삼일절, 봄기운과 함께 그 시절 암흑기에 맞서 싸운 많은 이들의 희생을 잠시나마 떠올리고, 지금의 대한민국 독립 국가가 될 수 있게 된 소중한 날임이 기억되길 바란다. "대한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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