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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군은 지난 30일 의 「6․1 의병의 날」을 기념하여 보성군 문화예술회관 대강당에서 「보성군 의병역사, 독립운동정신」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보성군 의병과 호남의병 정신을 계승·선양하기 위해 추진되었으며, ‘전라좌도 의병장 임계영’의 삶을 그린 연극공연을 시작으로, ‘보성군 의병 콘텐츠’, ‘보성 박광전 의병장’, ‘보성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주제 발표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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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성! 호남 의병 중심 거점으로 발돋움하다 |
보성군민은 임진년 전라좌의진을 결성하고, 전라우의병과 합세해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또한, 전남 지역에만 머물지 않고 경상도 등 전국적인 구국 활동에 나선 것도 보성 의병, 전라좌의진이 높게 평가되는 이유다.
(사)호남의병연구소 노기욱 소장은 보성군 의병 정신은 시대와 호흡하며 저항정신의 토양이 되어 오늘날을 촛불혁명의 진앙으로 계승되었음을 주장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을사늑약에 반대하며 호남 각지에 경고문을 보낸 백홍인 의병의 후손이 오늘날 촛불 혁명의 모태가 된 백남기 농민이었음 알아내며 그 맥락을 짚었다.
또한, 정만진 전 대구시 교육위원은 죽전 박광전 선생의 삶을 재조명했다. 특히,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창의하고 순국한 것은 ‘실천하는 선비정신의 표상’이라고 평가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박광전 선생의 나이는 67세, 72세였으며 이는 오늘날의 100세 이상과 비슷한 신체적 수준을 가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대부분의 의병단이 ‘임금을 위해서’ 또는 ‘전쟁이 끝난 후 참여를 하지 않은 가족을 연좌제로 벌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참가를 독려했던 것에 비해 박광전 선생은, ‘백성을 구하기 위해’창의한다는 인식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진보적인 근대적 사상으로, 정 위원은 ‘시대를 앞서간 진보적 민권사상 전파의 선구자’로 박광전 선생을 재평가했다.
보성군 문덕출신 안규홍 의병장은 전국 유일의 ‘머슴군 의병’으로 ‘가장 용감하고 신출귀몰한 의병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남에서 일제에 큰 타격을 입힌 인물로 일본군에게 ‘거괴’로 분류되기도 했으며, 일본군 중 가장 악랄한 육군 정규군 14연대를 파견해 안규홍 부대를 말살하려고 하기도 했다.
순천대 홍영기 교수는 “의병들은 밀고로 적발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보성의 경우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면서 “김구 선생이 40여일 간의 은거생활을 보성에서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남다른 애국심과 의향심을 가진 보성군민 모두가 애국열사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제발표가 끝난 후 이어진 토론회에서 정희선 교수는 청암대“보성은 용산서원, 대계서원, 오충사 등에 소장된 각종 의병 관련 사료와 김구선생 은거지, 채동선음악당, 나철기념관, 방진관 등 다수의 유적을 보유하고 있어, 의병 역사공원 콘텐츠를 개발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평가했으며, 광주교대 김덕진 교수는 “보성 의병과 민초들의 활약상을 조명 발굴에 나선 보성군의 의병 연구 활동은 분명 호남의병 조명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돈삼 홍보전문위원은 “지리적 위치나 유적, 콘텐츠, 인물 들을 종합적으로 따져봤을 때 보성은 호남의병공원 후보지로 최적의 요건”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철우 보성군수는 “보성은 임진왜란에서는 가장 먼저 전라좌의진을 만들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호남에서 가장 먼저 만세운동이 시작 된 곳”이라며 “호남 의병사의 중심에 보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 연구에 더욱 정진하여 보성 의병사를 재조명 알리는 데에 더욱 힘쓸 것” 이라고 밝혔다.
한편, 보성군은 호남 의병의 중심 거점으로 외세 침략에 맞서 분연히 일어나 민족자존의 가치를 드높였으며 지금까지 777명의 의병을 배출한 충절의 고장으로 『보성 의병사(3권)』,『담산실기』 편찬 등의 의향 보성의 역사와 문화 기반 조성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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