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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에 남편이 저에게 물어본적이 있어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못 배운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때 저는 그런 거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나중에 물어보니 그 대답을 들으면서 제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대요.
신혼여행 후에 시댁을 처음 갔는데 이 사람이 왜 그걸 물어봤는지 알게 됐어요. 마을 어귀에서부터 얼굴 새까만 꼬마가 달려오더니
“엄니 큰 성 와요!” 하면서 집으로 다시 달려가는거에요. 저 아이는 누구냐 그랬더니 초등학교 5학년 막내동생이라고 하더라구요. 막내 동생은 집을 지키느라 결혼식에서 못 왔거든요. 얼굴이 새까만 꼬마가 저를 빤히 보니 당황했는데 막내 동생이었더라구요.^^
집에 도착해서는 이렇게 못사는 집도 있구나 깜짝 놀랐어요. 그 때 당시에는 시골이래도 다들 연탄보일러로 바꾸고 우물에 모터를 달아서 수도로 끌어올려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고 그랬거든요. 근데 그 집은 그대로 짚단 갖다가 아궁이에 불 때서 밥하고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뜨더라구요.
밤에는 이불 하나에 온 가족이 다 덮고 잤어요. 일종의 문화 충격이었죠.
그래도 삶이 다 비슷하더라구요. 그동안 내가 특별한 혜택을 받으며 살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시집에 더 잘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 재봉틀의 추억
어느날 하루는 큰 누나네를 갔는데 아주 오래된 재봉틀이 있더라구요. 자세히 보니까 바로 제가 결혼 전에 사드린 재봉틀이었어요. 이걸 아직도 갖고 계시냐고 했더니, 인생의 기념물이라서 간직하고 있다는 거에요.
종암동 큰 누나네를 갔는데 개미굴 같은 미로같은 골목을 지나니 쓰러져가는 오막살이가 나오더라구요. 들어가니 두 아이 키우는 누님이 계셨어요. 한 애는 기어다니고, 한 애는 서너살 정도 되었을거에요. 군인이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즉사해 스물 여덟에 혼자가 되셨어요. 애들이 있으니 막일도 못하고 봉제 인형에 눈알 붙이는 걸로 벌이를 하는 거에요. 쪼그리고 앉아서 하루종일.
방법이 없을까 고민고민하다가 제안을 드렸어요. “형님도 한복바느질을 한번 배워보시는 건 어때요?.” 그리고 제가 재봉틀 사드렸어요. 당시 제 월급 한달치가 재봉틀 값이었는데 한 가족 살리는데 그게 문제겠어요. 제가 생각해도 정말 잘한 일 같아요. 형님이 재주가 좋으셔서 어렵지 않게 한복일을 하실 수 있었어요. 두 아이를 거뜬히 대학도 보내고 시집 장가도 다 보냈죠.
그 재봉틀을 아직도 가지고 계셨던거에요. 어찌나 감동이던지. 제 마음을 알아주시니 정말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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